나의 회화는 오래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된다.
화면은 납작하다.
깊은 원근을 강조하기보다 사물의 형태와 윤곽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구조를 가지며
공간은 과장된 입체감 대신 평면에 가까운 질서를 유지한다.
서로 다른 거리에 놓인 대상들은 화면 위에서 비슷한 밀도로 존재하고
이러한 구성은 하나의 장면을 재현하기보다 관찰 속에서 다시 정리된 형태로 사물을 마주하게 한다.
작업은 집이라는 공간에서 출발한다. 집은 내가 온전히 쉴 수 있는 유일한 안식의 장소였고 일상의 가장 기본적인 안정감이 머무는 곳이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사물들과 집안 곳곳에 자리한 식물들, 창밖으로 이어지는 풍경들은 그 안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대상들이다.
나는 이것들을 오랜 시간 바라보며 형태와 관계가 화면 안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살핀다.
대상은 입체적인 묘사보다 윤곽과 색의 면을 중심으로 정리되고 색면들은 서로 맞물리며 납작하게 형태를 이룬다.
깊이가 제거된 자리에서 사물들은 하나의 장면 속 대상이기보다 화면의 질서를 이루는 요소로 존재하게 된다.
색채는 선명하되 과장되지 않는다. 강한 대비나 감정적 표현 대신 색의 면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조용한 균형을 이룬다.
색은 사물의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형태와 형태 사이의 관계를 구성하는 언어로 화면 위에 놓인다.
이러한 회화는 기록이라는 태도와 연결된다. 여기서 기록은 완성된 이미지를 남기는 일이 아니다.
조르주 페렉이 일상의 공간을 아무런 의미 부여 없이 반복해서 기술했던 것처럼
나 역시 사물을 상징이나 서사로 환원하지 않고 그것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화면에 머물게 하는 방식에 가깝다.
대상은 빠르게 해석되거나 의미로 고정되지 않는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바라보는 과정 속에서 형태의 위치와 외곽선, 색의 관계가 천천히 화면에 남는다.
잎이 향하는 방향, 줄기가 휘는 지점, 그릇의 입구가 열리는 각도 — 이것들은 반복된 시선 속에서만 비로소 형태로 남는다.
식물과 사물은 서로를 향하지 않은 채 화면 위에 나란히 놓이고 그렇게 하나의 조용한 풍경이 된다.
나는 특별한 장면을 찾기보다 반복해서 마주하는 것들을 오래 바라보는 방식을 택한다.
그렇게 바라본 대상들은 납작한 화면 위에서 형태와 색의 관계 속에 다시 놓이고 그 안에 머무는 시간의 감각이 조용히 남는다